초등학교에 아이를 보내기 시작하면 매일 아침 생기는 고민이 있다.
'오늘 도시락 싸줘야 하나, 아니면 학교 급식 먹이면 되나.'
한국이었다면 고민할 것도 없이 학교 급식이 당연한 선택이었을 텐데, 미국은 조금 다르다. 급식을 먹이는 집도 있고, 매일 도시락을 싸주는 집도 있고, 섞어서 하는 집도 있다. 어떤 선택이 맞다기보다, 학교 분위기와 아이의 상황, 그리고 부모의 현실에 따라 달라지는 문제다.
우리 집도 처음부터 지금까지 그 선택이 몇 번 바뀌었다.
처음엔 무조건 도시락이었다
아이를 처음 미국 학교에 보낼 때, 나는 당연히 매일 도시락을 싸줬다.
사실 처음에는 학교 급식이 어떤 건지도 잘 몰랐고, 뭘 먹는지 알 수 없는 급식보다 내가 직접 싸주는 도시락이 마음이 더 편했다. 도시락 통을 열면 내가 챙겨준 음식이 그대로 돌아오거나, 다 먹고 돌아오거나, 그 결과가 눈에 보인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였다.
LA 지역 초등학교에 다닐 때는 그 분위기가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주변 학부모들을 봐도 도시락을 싸주는 경우가 꽤 많았고, 한국 학부모들 사이에서는 더욱 그런 분위기였다.
PV로 이사하고 나서 바뀐 것
3학년이 되던 해에 Palos Verdes로 이사를 하면서 학교가 바뀌었다.
그리고 분위기가 달랐다. 주변 아이들이 카페테리아에서 급식을 먹는 경우가 훨씬 많았다. 친구들이 다 카페테리아에서 밥을 먹으니, 자연스럽게 아이도 도시락이 싫다고 했다. 친구들이랑 같이 카페테리아에서 먹고 싶다는 것이었다.
솔직히 워킹맘 입장에서도 매일 아침 도시락을 싸는 건 보통 일이 아니다. 결국 3학년부터 5학년까지는 학교 급식을 먹이기로 했다.
캘리포니아 학교 급식은 무료다
미국 학교 급식 하면 "돈을 내야 하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다. 실제로 주마다, 교육구마다 다르다.
캘리포니아는 조금 특별하다. 캘리포니아는 2022-23학년도부터 전국 최초로 Universal Meals Program을 영구적으로 시행하고 있으며, 소득 수준에 관계없이 모든 공립학교 TK-12학년 학생에게 무료로 아침과 점심을 제공한다. 코로나 시기를 거치며 무료 급식이 확대되었고, 이제는 캘리포니아에서는 급식비 걱정을 할 필요가 없다.
학교마다 조금 다를 수 있지만, 우리 아이 학교 기준으로는 매달 한 번 이메일로 그 달의 점심 메뉴가 안내된다. 어떤 날 어떤 메뉴가 나오는지 미리 알 수 있어서 아이와 이야기도 나눌 수 있고, 특별히 싫어하는 날은 도시락을 싸는 방식으로 활용하는 학부모들도 있다.
카페테리아에서 스낵을 사먹을 수도 있다 : LINQ Connect
무료 아침과 점심 외에도, 카페테리아에는 아이가 따로 스낵을 구입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쿠키, 음료, 아이스크림 같은 것들이다.
이걸 이용하려면 아이 계좌에 돈이 있어야 한다. 우리 학교는 LINQ Connect(LINQ School Nutrition 앱) 를 사용하는데, 앱에서 아이의 계좌를 관리하고, 잔액 확인과 충전, 거래 내역 조회, 지출 한도 설정 등을 한 곳에서 할 수 있다.
LINQ Connect는 앱 스토어와 구글 플레이에서 다운받을 수 있고, 등록 후 아이의 이름과 생년월일로 학생 계좌를 연결하면 된다.
여기서 내가 경험한 재미있는 에피소드가 있다.
아이가 어릴 때 굉장히 소심한 성격이었다. 혼자 무언가를 주문하거나 계산하는 걸 무서워했다. 그 성격을 조금이라도 바꿔보고 싶어서 계좌에 15달러를 넣어줬다. 친구들이랑 같이 뭔가 사먹어보라는 은근한 바람을 담아서.
결론은 단 한 번도 쓰지 않았다. 그 돈 그냥 날리겠구나 싶어서 거의 잊고 있었는데, 나중에 학군이 바뀌면서 새 학교에서 LINQ Connect를 다시 설정하다가 확인해보니 그 15달러가 고스란히 이전되어 있었다. LINQ Connect는 아이의 계좌 잔액이 학년이 바뀌어도, 같은 교육구 안에서 학교가 바뀌어도 함께 이동한다. 예상치 못한 반가운 발견이었다.
도시락 vs 급식, 각각의 현실
몇 년을 오가며 느낀 점을 솔직하게 정리해보면 이렇다.
도시락의 장점은 내가 뭘 먹이는지 알 수 있다는 것이다. 아이가 좋아하는 음식을 담아줄 수 있고, 알레르기나 식이 제한이 있는 경우에도 걱정이 없다. 한국 음식이나 아이 입맛에 맞는 것을 챙겨줄 수 있다는 점도 많은 한국 학부모들이 도시락을 선택하는 이유다.
도시락의 현실은 매일 아침 준비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워킹맘이라면 특히 주중 아침 도시락 준비가 상당한 에너지를 요구한다. 냉장고에 뭐가 있는지 확인하고, 전날 밤 준비를 해두지 않으면 아침이 늘 바빠진다.
급식의 장점은 아침 준비 부담이 없다는 것이다. 캘리포니아는 무료이기까지 하니 비용 걱정도 없다. 아이가 카페테리아에서 친구들과 함께 먹는 시간이 사회적 경험이 되기도 한다.
급식의 현실은 메뉴가 미국식이라는 것이다. 피자, 버거, 샌드위치 같은 메뉴들이 주를 이루고, 처음에 한국 음식에 익숙한 아이들은 적응이 필요할 수 있다. 아이가 메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 날에는 결국 많이 안 먹고 오기도 한다.
많은 가정이 두 가지를 번갈아 가며 쓴다. 아이가 급식 메뉴를 좋아하는 날은 급식, 싫어하는 날이나 특별히 챙겨주고 싶은 날은 도시락. 이게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기도 하다.
중학교에 와서 달라진 것
5학년을 마치고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다시 도시락을 싸고 있다.
중학교도 여전히 무료 아침과 점심이 제공된다. 그런데 신기한 건, 조금 성장한 아이가 스스로 급식을 활용하기 시작했다는 점이다. 어릴 때는 카페테리아에서 혼자 뭔가를 하는 것조차 어려워했던 아이가, 이제는 친구들과 약속을 잡아 학교에 일찍 가서 아침 급식을 같이 먹기도 한다.
아이가 성장하면서 이런 것들을 스스로 선택하고 활용하게 되는 게 보일 때, 학교라는 공간이 단순히 공부하는 곳이 아니라 사회적인 공간이라는 걸 새삼 느끼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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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무리
미국 학교 급식이냐 도시락이냐는 정답이 없는 문제다.
아이의 입맛, 학교 분위기, 부모의 시간, 아이의 사회적 상황. 이 모든 것이 맞물려서 선택이 달라진다. 처음에는 무조건 도시락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가, 현실을 겪으면서 유연하게 바꿔왔다.
기억해두면 좋은 것들을 정리하면 이렇다.
캘리포니아 공립학교는 아침과 점심 모두 무료다. 카페테리아 스낵 구매는 LINQ Connect 앱으로 계좌를 관리한다. 잔액은 교육구 내에서 학교가 바뀌어도 유지된다. 매달 이메일로 급식 메뉴를 미리 확인할 수 있다.
아직 어떻게 할지 고민 중이라면, 일단 급식을 먹여보고 아이 반응을 보면서 결정해도 늦지 않다.
*본 포스팅은 개인적인 경험을 바탕으로 작성되었습니다. 급식 정책과 시스템은 학교 및 교육구마다 다를 수 있습니다.*
